내 글이 처음 칭찬 받던 날
처음 글쓰기에 칭찬을 들은건 국민학교(그때는 ‘초등’이 아니었다) 2학년 때였다. 학교앞에서 사온 병아리가 며칠 안되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그걸 아파트 화단에다 묻어주고 일기를 썼다. 병아리를 잃고 ‘병아리야, 고이 잠들어라…’ 로 끝을 맺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너무 감동적이라며 반 친구들 앞에서 내 일기를 읽어 주셨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속으로는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다.
10대 때는 팬픽을 썼다
10대 초기에는 HOT팬이었는데, HOT가 해체하고 나서, 유승준에 푹 빠졌었다. 한번은 같은 앨범의 CD를 두장이나 샀다. 앨범 판매량 높여줄려고. 그렇게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유승준 나오는 방송은 본방사수하고, 콘서트도 보러 가고, 오밤중에 팬레터를 쓰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온갖 오글거리는 짓은 다했다!)
그때 인터넷이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는데, 유승준 팬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열심히 팬픽을 썼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야말로 소설이다. 주인공이 유승준일 뿐. 나름 인기도 많아서 조회수가 600~1000 사이였던 것 같다. 암튼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10대 치기어린 여자아이 눈으로 시리즈물로 열심히 써댔다. 당시 닉네임이 함초롬승준이었는데 기억하는 사람 있으려나.
20대 초반에는 레포트와 이력서를 주구장창 썼다
대학 다닐 때는 하도 써야 되는 레포트가 많아서 영혼없이 분량만 채우는 글을 많이도 써댔다. 그러다 회사에 취업해 보겠다고 이력서를 그야말로 주구장창 썼다. 하도 뽑아주는 데가 없어서 제발 뽑아만 주십시오, 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썼는데, 한 100번 정도는 쓰지 않았나 싶다. 나중에는 하도 안되서 영어로도 이력서를 썼는데 결국 외국회사에 다니게 됐다.
20대 후반에는 업무 이메일과 계약서를 몇천번 썼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업무 문서 쓰기가 시작됐다. 회사에서 모든 일은 결국 문서로 통한다. 그렇게 회사일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접하지 않을 그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과 숫자만으로만 가득찬 문서를 몇천통을 썼다. 한국어로도 쓰고, 영어로도 쓰고, 중국어로도 쓰고, 이리저리 번역하고. 이제껏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감정이 일체 배제된 건조한 글이었다.
30대 접어들면서 육아 넋두리를 징하게 썼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면 20대 후반은 나름 행복했던 모양이다. 그때는 반짝반짝하던 시기였고, 일기를 쓸만큼 한가롭지도 않았다. 맛있는거 먹으러 다니기 바빴고, 좋은 곳 놀러다니기 바빴고, 남자친구와 사랑, 사랑하느라 바빴다.
스물아홉에 첫아이를 낳고 내 인생이 뒤집어졌다. 집안에 감금되어 애만 보고, 살림하며, 직장일하며 돈까지 벌어야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이 시작됐다. 차라리 그전에 자유를 맛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으련만. 여자의 인생은 원래 이런거야, 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더라면 마음은 더 편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겪어 버렸다.
한없이 불행해진 나는 속이 답답해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대나무숲이든 어디든 가서 소리쳐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주 예전에 열어놓은 네이버카페 칼럼방에 주제하고는 관련도 없는 육아 넋두리를 마구 쏟아냈다. 그런데 지구 저 반대편에서 내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는 독자분들 연락을 받았다. 글을 써줘서 감사하다는 댓글도, 채팅도 여럿 받았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30대 초반에는 시골 이야기를 징하게 썼다
한참 효리네 민박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시골살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시골 촌집 리모델링해서 들어왔다. 시골살이는 예상하고 달라도 너무 달랐다. 21세기 사람이 18세기 세상에서 사는 느낌이랄까. 도시에서 살던 방식으로부터 송두리째 달라져야 했다. 외국살이도 이곳저곳 여러해 해봤지만 시골살이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시골살이 좌충우돌 이야기를 전원살이 꿈꾸는 사람들 카페에 연재를 했다. 30대 젊은 부부가 시골살이하는게 흔치 않은데다, 다들 막연히 꿈만 꾸는 시골살이 이야기를 생생하게 쓰니, 나를 좋아해 주시는 독자분들도 꽤 생겼다. 몇년째 소소하게 시골에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코로나 유배생활, 어쩔 수 없이(?) 글을 쓴다
시골에서 코로나 때문에 셀프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보니, 유배 생활이 따로 있나 싶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섬이라서, 왠지 유배지라는 느낌을 더한다. 시골에서 새소리나 듣고, 밥하고, 살림하고, 애들 뒤치닥거리하고, 텃밭도 가끔 가봐야 한다. 시골에서 밤은 고요하고 한적해서 괜히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쓴다. 글감을 떠올리다 보니, 예전에 있었던 추억 조각 하나하나 다 소환해서 쓴다. 어쩌다 보니 이불 속에서 하이킥 해야 할 것 같은 강자매 샌드위치 이야기부터 기억도 가물가물한 남자친구(현재 남의 편)와의 사랑 이야기까지 다 썼다. 지금은 외국회사에서 영업하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남들이 보면 코웃음칠 비전문가 이야기인 것 같아서 쓰다가도 망설여진다. (그래서 지금 뜬금없이 영업 이야기 말고 이 글을 쓰는거다!) 그래도 뭐 오랜 세월 깊은 전문가도, 얇고 넓은 전문가도 글쓸 자격은 있으니깐. 작가가 별건가? 독자가 있으면 작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