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고 나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몸의 변화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중3때 이후로 지난 15년동안 제 몸 사이즈는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때 키가 지금 키고, 그때 몸무게가 지금 몸무게이고, 그때 발사이즈가 지금 발사이즈입니다. 생리도 그때부터 시작해서 매달 한번씩 꼬박꼬박 해왔고요. 그런데 임신하면서 생리를 하지 않게 되고,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기 시작하더니, 배는 앞을 향해서 계속 나오기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배가 터질까봐 겁날 정도였어요. 배가 나오니 혈액순환이 안되서 종아리는 남편보다 더 굵어지고, 발도 붓기 시작해서 발사이즈도 한 치수 커지는데다 만삭에 가까워질 때는 발등도 부어서 슬리퍼만 신고 다녔습니다.
남편은 배만 볼록나오는 모습이 ET 같다며 키득대며 놀리고 이걸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며 사진을 찍어 댔습니다. 몸은 점점 커져서 임신복을 입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남편옷이 가장 편해서 남편옷을 뺏어다 원피스처럼 입었습니다.
배만 나오나요? 임신 후기로 향해갈수록 가슴은 풍만 그 자체가 되죠. 아기한테 줄 젖을 생산하기 위해서 몸이 준비하는 거잖아요. 우리 엄마 말로는 수박 두덩이를 달고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남편은 연신 감탄했어요. “자기가 이렇게 글래머인줄 몰랐네. 나중에 아기 낳고나면 다시 쪼그라들겠지? 아쉽다!”라는 감상평을 남길 정도.
예정일이 가까워지고 새벽에 양수가 터져서 남편하고 급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무통도 달고, 간호사가 하라는대로 이리저리 힘을 주고, 힘 못준다고 혼도 나고, 으아 으아 짐승의 소리같은 비명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옆에 남편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옆에서 미안해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습니다. 첫손주다 보니 친정엄마, 아빠, 제 여동생까지 달려와서 문밖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고요. 저는 남편한테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있어요. “허리가 너무 아파! 허리가! 허리! 허리를 손으로 문지르라고!! 그래! 거기!” 아기가 돌면서 나오는데 한번씩 돌때마다 허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남편은 있는 힘껏 제 허리를 손으로 문지르고요. “아기 나옵니다! 산모님 힘 주세요! 잘하고 있어요!” 이러는데 진통하는 7시간 내내 코빼기도 안비쳤던 의사가 가위와 시술도구를 들고 들어왔어요.
“그 때 그 의사가 들어오는데 이제 우리 부인 살았구나 싶더라고. 구세주가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 조금 이따가 가위로 ‘싹뚝’ 회음부 절개하는 소리가 들리고, 뭐가 물컹물컹 나오는 소리가 들려. 무서워서 보지는 못했는데 간호사들이 급하게 솜으로 계속 틀어막고.. 나는 애 낳는데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는 줄 몰랐어. 난 그렇게 많은 피를 보니 기절할 것 같더라고. 근데 애기 울음소리가 들려. 그리고 나보고 아빠라고 가위로 탯줄을 자르라고 하는데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었어.”
남편이 기억하는 출산의 순간입니다.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엄청 아팠고, 계속 용을 썼고, 애도 살고 엄마인 저도 살려면 이 순간이 어떻게든 지나가야 해결되니 그저 간호사들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에요. 낳자마자 아기를 제 품에 안겨주는데, 아기가 너무 크고 통통해서(3.6킬로) 어떻게 이렇게 큰 애가 내 뱃속에 들어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어요. 낳고나니 날아갈 것 같았어요. 열달동안 품고 있던 아기가 나오고나니 후련한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회복실로 옮겨서 미역국도 한 사발 먹고 있는데 배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간호사가 와서 “지금부터 자궁 수축될 거니깐 계속 배 문지르면서 마사지해줘야 해요”라며 남편한테 당부하고 갔고요. 남편은 자기가 애 낳은것도 아닌데 기진맥진해서 잠 좀 자야겠다며 집에 쉬러 갔어요. 친정엄마하고 제 여동생이 마사지를 몇시간동안 계속 해 주었어요.
아기 낳은지 3일째 되는 날, 남편하고 저하고 아기를 안고 집에 갔어요. 병원문을 나서는데 남편하고 저하고 서로 안고 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던 기억이 나네요(지금은 서로 안 안으려고 싸움). 병원 앞에서 세 식구가 된 기념사진도 찍고요. 아기는 병원에서 싸준대로 속싸개로 꽁꽁 싸여 있었는데 남편이 “우리 애기가 이렇게 싸여 있으면 답답할 것 같애. 풀어줘야지.”하면서 풀어줬는데 그때부터 사이렌소리를 내면서 한참동안 울기 시작했어요. 초보 부모는 어쩔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유투브에 ‘속싸개 싸는법’ 이런 거를 검색해서 다시 엉성하게 싸 주었습니다. 그제서야 아기는 다시 진정을 되찾았고요. 저는 엉성한 자세로 아기한테 젖을 물려보려 했지만 아기는 뭐가 불편한지 울기만 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니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가슴이었어요. 신생아는 눈 감으면 잠자고, 눈 뜨면 젖먹고, 그 두 가지밖에 안하거든요. 처음에는 제 가슴에서 어떤 액체가 나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아기가 빨아먹으면서 젖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기가 힘껏 빨아먹고 나면 젖이 홀쭉해져요.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젖이 도는 느낌이 들고 젖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해요. 그러면 아기가 또 빨아먹고, 저는 또 젖을 생산하고…
젖 생산은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어요. 과연 이 젖이라는 액체에 영양분이 있을까? 아기가 이것만 먹고 클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신기한게도 아기는 젖만 먹고도 쉬를 하고 똥을 누었어요. 젖만 먹는데도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몸무게가 점점 늘어났어요. 100일 때는 8킬로 조금 넘었는데 스스로 어찌나 대견하던지요. 내 몸이 이렇게 생명의 액체를 만들어 내다니! 식물 하나 제대로 키워본 적 없었고 키우기 쉽다는 화분도 죽이기 일쑤였는데, 내가 만들어낸 젖으로 아기를 키우고 있다니! 요즘 시대에 모유수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뿐더러, “왜 분유 안먹이고 젖 쳐지게 모유수유를 해?”라는 핀잔밖에 못 듣지만 저 스스로한테는 이제까지 이뤄낸 어떤 학문적 성취, 사회적 성취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벅찬 일이었어요.
임신, 출산, 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 몸은 항상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자궁과 가슴(유방)은 항상 그 자리에서 임신이 되면 그 기능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더라고요. 자궁에서는 달마다 난자 하나씩 성숙시켜 내보내는데 정자하고 못 만나서 임신이 안되면 결국 생리라는 피를 쏟아내지요. 제 가슴은 워낙 한국형 표준 AAA 크기라서 가슴띠만 둘러주고 별 신경 안쓰고 살았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제대로 기능할 준비는 하고 있었더라고요.
임신, 출산, 수유를 안했더라면 제 자궁과 가슴은 그 기능을 해보지 않고 지나갔을 거에요. 임신, 출산, 수유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성역일지도 몰라요. 남자들 까짓것들이 아무리 잘났을지언정 임신, 출산, 수유를 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불리할 때마다 남편한테 임신 부심, 출산 부심, 수유 부심을 부립니다. 그러면 항상 남편은 의문의 1패.
“야! 니가 뱃속에 애 열달 넣고 다녀봤어? 그 작은 곳으로 애기 낳을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진짜 죽어! 그리고 내 젖 먹고 우리 아기가 이만큼 컸어! 남편 니가 한게 뭐야? 애기 만들때 조금 거든거, 그거 말고 더 있냐? 할말 있으면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