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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낳을 자유를 허하라

그야말로 1인 가족, 비혼, 딩크, 노키즈존이 대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 삶은 정반대에 있다. 4인 가족, 기혼, 애들 둘에 남편이 딸려 있고, 24시간 내내 애들과 붙어 있다(코로나로 집에서 데리고 있은지 어언 반년째다). 또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을 보면 결혼 안한 사람들 수두룩 빽빽하고, 결혼은 해도 애 안 낳은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 별나게 결혼하고 애를 (그것도 둘이나) 낳았다. 대세가 뚜렷한 사회에서 혼자서 다르게 살아간다는 건 사회적 소수자가 된다는 건데, 그건 퍽이나 외로운 일이다.

첫째가 3살 되던 해,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갔었다. 면접위원들이 공통적으로 묻는건 단 하나였다. “둘째 애를 낳을 계획이 있나요?” 나도 사회 생활 안해본 사람도 아니고, 그들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도 전직장에서 중간관리자로 있어봤기에 잘 안다. 회사 입장에서야 당연히 회사에 폐 끼치지 않고, 회사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인력(인재가 아니다)을 원한다. 해당 인력이 업무에 탁월하고 유능한지는 중요치 않다. 여자 직원은 임신이네 해서 병원 들락거리고, 출산하면 또 3개월 쉬다오고, 허구헌날 애가 아프네 어쩌네 조퇴가 잦다가, 결국 육아휴직을 쓰기까지 하니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을 거다. 업무 능력은 다소 부족해도 아내의 내조 받으며 깔끔한 와이셔츠 입고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하러 나오는 남자 직원이 뽑고 싶을 거다. 

그래서 나도 면접위원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둘째 계획 없습니다.” 그들은 재차 확인했다. “확실해요? 첫째가 세살쯤 되면 둘째 가질 때 됐는데…” “계획 없다니깐요. 요새 세상에 애 하나도 키우기 벅찬데요. 어휴..” 짜증 섞인 투로 대답했는데, 그들은 도리어 안도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작정하고 계획한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생겼다. 첫째하고 터울이 더 나지 않게 둘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삼신 할머니가 살며시 점지해주고 가신 모양이다. 임신한지 얼마 안되어 유난히 입덧이 심해 직원 휴게실에서 누워 있었는데, 그때 대표님이 와서 말을 걸었다.

“둘째 임신했다면서요? 몸 조심해요. 원하는대로 출산휴가, 육아휴직 승인할게요. 대신 1년 후에는 꼭 복직해야 합니다.”

나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같은 비슷한 말로 대답을 했던 거 같다. 진심이 1도 담기지 않은 말이었지만 사회생활 좀 해 봤다고 속에 없는 말도 곧잘 한다. 침만 한번 꼴깍 삼키면 된다.

둘째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축하해주는 사람은 가족 빼고는 없었다. 별의 별 말을 다 들었다. “어떻게 둘째 가질 생각을 해? 외국물도 먹고 해서 똑똑한 줄 알았는데 헛똑똑이네! 헛똑똑이!”, “형제자매가 필요하다고 둘째 낳는건 부모 욕심이야.”, “첫째 키울때도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둘째를 어떻게 가질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젊을 때 바짝 돈 벌어야 되는데 자꾸 애만 낳고 그래서 직장생활하겠어?”, “요새 세상에 아들 없어도 괜찮은데 왜 둘째를 낳아?”,”육아휴직 할려고 취직했어? 프로 육아휴직러네.”…. 정말이지 끝도 없다. 난 아들 타령 한 적도, 돈 타령 한 적도 없는데 다들 넘겨짚고 혀를 끌끌 찬다.

나도 하도 들어서 안다. 애를 낳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집값이 얼마나 비싼데 집 한칸도 없으면서 애만 덜컥 낳을 수 없고, 아이 하나당 들어가는 비용이 1억이 훨씬 넘는다던데, 애가 있으면 애한테 매여서 해외여행가고, 밤문화 즐기던 자유는 끝이다. 미세먼지에, 코로나에, 기후변화에 아이를 낳는건 이기적인 부모이다. 지구에 인구는 이미 너무 많고, 효도는 바라서도 안되고, 노후는 결국 돈이고, 내 아이가 어떤 아이로 클지 모르는데 그 불확실성을 어떻게 감당하며, 나 스스로 뒷감당도 안되는데 어떻게 감히 다른 사람을 돌본단 말인가. 직장도 비정규직이고 모아둔 돈도 없어서 나만 겨우 먹고 사는데 어떻게 식구를 늘린다는 거야.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나도 저 말이 유일한 진실인 줄 알고 애를 안 낳고 살았다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아이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예전에 내가 보던 세상은 12색 크레파스로 그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총천연색, 그러니까 60색 크레파스로 그릴 수 있을 정도이다. 예전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희노애락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강도 2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강도 200 수준이다. 좋을때는 너무 좋아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고, 슬플 때는 땅이 꺼져서 그 밑에 깔려 죽을 것 같으니까.

아이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친정에 볼일이 있어 급히 시외버스에 애 안고 유모차 접어가며 낑낑대며 올라탔는데 애는 이유없이 계속 울어댄다.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봐도 애는 울음을 안그치고 “애 있는 사람이 왜 버스를 타? 왜 밖을 나와?”하는 승객들 짜증스런 눈초리가 등에 꽂힌다. 급기야 버스기사가 버스를 세우고 내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오기까지 한다. “애가 왜 이렇게 울어요? 어휴.. 이거라도 좀 먹여보세요!” 짜증내며 던지다시피 주고가는 초콜렛. 나는 죄인이 되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읊조린다. 근데 저기, 제 아기는 채 이빨도 안난 5개월 아기인데요.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고 있는데 애가 자꾸 엄마 엄마 칭얼거리면 “애 있는 사람이 왜 카페를 와?”하는 손님들 따가운 눈초리가 등에 꽂힌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줌마! 애를 왜 데리고 나와요? 그리고 애가 울면 어떻게든 좀 하세요! 다른 사람한테 피해 좀 주지 말고!”

사회 소수자가 되어 사회에서 격리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낀다. 그래서 왠만하면 집에 있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독박육아를 하게 되었다. 정 답답하면 우리가 가도 되는 몇 안되는 놀이터나 키즈카페 따위를 다닐 뿐이다. 사회에서 격리 당하고 보니 예전에 내가 얼마나 무심하게 살았는지 반성이 된다. ‘에이 설마, 뭐 그 정도에요?’ 하는 사람들은 운좋게 사회 주류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이건 경험해 보기 전에는 절대 공감할 수 없을 거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친정엄마가 다시 보였다. 애 낳기 전에는 몰랐다. 우리 엄마는 왜 항상 짜증내고, 피곤해하고, 불평이 많고, 잠시 못 앉아있고 항상 종종거리는지… 애를 낳고나니 엄마가 측은해졌다. 엄마 뼈와 살을 갈아서 아빠와 딸 둘 뒷바라지를 했다. 물론, 아빠도 직장생활 버티며 처자식 먹여 살리는 거 안 힘들었다는 거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술을 마셨을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은 나의 수고를 잊지 않는다. 매달 월급을 주고, 월급이 꼬박꼬박 올라가고, 직책도 올라가고, (앞에서는) 나를 따르는 직원들도 있다. 직장과는 달리 육아와 집안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고마워하지도 않고,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도 않고, 쉬는 날도 없고… 내가 아줌마가 되고보니 그 젊은 시절 우리 엄마가 측은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친정에 가면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곤 한다. 엄마한테 해줄게 없어서 그거라도 한다.

애 뒷바라지도 힘겹고,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도 서럽지만, 그래도 이 모든 걸 상쇄할만큼 좋은 점 두 가지가 있다. 나날이 커가는 생명을 바로 곁에서 두고 지켜보고, 보살핀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을 선사하는지 아는가? 첫째가 태어났을때 아기를 지긋이 바라보던 우리 엄마, 아빠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게 넋놓고 좋아하시는건 처음 봤다. 내가 이제까지 어떤 학문적 성취, 직업적 성취를 이루었을 때도 그 정도로 좋아하시지는 않았는데…

 
우리는 일개 장미꽃 만발한 것만 봐도 감탄하곤 하는데, 하물며 사람꽃은 어떠하랴. 우리 첫째는 꽃봉우리 같고, 둘째는 새싹 같다. 첫째와 둘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얼굴도 보이고, 남편 얼굴도 보이고, 시어머니 얼굴도 보이고, 친정 엄마아빠 얼굴도 보인다. 참으로 오묘하다. 내 예전 사진을 보고 있으면 지금 얼굴하고 비교되서 속상한데, 첫째 얼굴에 얼핏 내 젊은 시절 모습이 스친다. 나는 늙어갈지언정,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시간이 지나는게 야속하지만은 않다. 아이들이 주는 활기가 있다. 아이들이 있어서 사는 이유가 생겼다. 아이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건강을 챙기고, 돈을 벌고, 부지런히 나들이를 간다.

아이는 나에게 아낌없고, 꾸밈없는 순수한 사랑을 무한정 준다. 우리는 흔히들 부모가 희생해서 키우고,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 그 반대다. 아이가 나한테 사랑을 준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을만큼 너무 많이 준다. 직장 갈때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가면 아기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엄마 엄마 꺼이꺼이 울고, 직장에 다녀와서 집에 들어서면 아기는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며 있는힘껏 빨리 기어 와서 나를 안아준다. 나한테 엄마 엄마 말걸어주고, 시도때도 없이 뽀뽀해주고, 나를 닮았다며 공주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준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계산없이 순수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어디에 누가 나를 이토록 간절히 필요로 한단 말인가? 아기가 오기 전에 내 삶은 흑백처럼 단순했고, 그제가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 같았던 지루한 나날이었는데, 아기와 함께 이렇게 총천연색 세상이 나에게 왔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남편하고 농담삼아 셋째 이야기를 한다. 셋째를 가졌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잡아 먹을지도 모른다. 특히 직장 상사들은 또 얼마나 나를 몰아 세울 것인가. 일일이 날을 세우고 싶지는 않다. 각기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아이 안낳을 자유도 있지만, 아이 낳을 자유도 있다. 아이 안 낳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아이 낳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너희의 아이없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아이있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그러니 아이 낳을 자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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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비쥬 says:

    한국에서 “애기엄마”로 살기 너무 서러워지는 순간이 많군요.. 내가 한국에서 아가씨였던 시절에 다른 아이있는엄마들에게 내 행동이 어땠는지 곰곰이 되짚어지네요..

    제가 사는 캐나다에선 “아이랑 (그것도 더 어린아기일수록) 외출하는건 거짓말좀 보태서 왕이랑 외출하는것” 같거든요.. 길에만 나가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부딪히지 않게 물길 갈리듯 쫙 갈려서 비켜주고요, 늘 양보받고 ,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사람들이 밝은얼굴로 제 아기에게 인사해줘요 헬로우 스윗티 , 너 정말 귀엽다 등 아기엄마로서 그런 소소한 인사를 받는건 그날 기분을 더 신나게 해주지요. 가장 좋은점은 그런 밝음을 제가 배워가요. 길에서 아이와 함께있는 엄마를 보면, 그들이 그래줬듯 저도 밝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정한 인사를 합니다.
    사회가 이래야지요.. 이런 방향으로 돌아가야지요 ..

    (물론 여기도 차가운 사람들도 많고ㅠ
    한국에도 따뜻한 사람들이 많지만요)

    반항의 의미로 홧김에 셋째 낳아버리세요!ㅋㅋㅋㅋ

    1. 반항의 의미로 낳기에는… ㅎㅎㅎㅎ 후폭풍이 두렵네요. 그나저나 캐나다 디게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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