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남자가 디자인
한국 여자와 사랑에 빠져 꿈에도 생각도 해본 적 없던 한국 땅을 밟게 된 프랑스 남자 빈센트. 어쩌다 아빠 포대기를 디자인하게 되었다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포대기와의 첫만남 이야기부터
2014년에 결혼하자마자 아기가 생겼어요. 한국도 처음이고, 결혼도 어색한데, 갑자기 아빠까지 되니 심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었어요. 아내하고 다툼도 많았어요. 저는 프랑스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프랑스 육아책을 참고했는데 책대로 되지 않았어요. 아기는 항상 울기만 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장모님이 포대기를 하시는걸 보았는데, 아기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는 거에요. 그리고 포대기에 안겨서 쌔근쌔근 잠이 드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요즘 포대기 잘 안하지 않나요? 아기띠나 유모차는 많이 봤지만…
맞아요. 보통 포대기를 시골 할머니들이 하는 거라고 촌스럽다고 생각을 많이 하더군요. 저희도 포대기는 생각도 못하고 출산준비물로 아기띠와 유모차만 준비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막상 키워보니 포대기만큼 유용한게 없었어요. 일단 아기띠는 아기가 하기 싫어서 아기띠하면 막 울었어요. 아기도 점점 무거워지는데 아기띠 자체가 무겁고, 외출할 때 아기띠 부피가 커서 들고 다니기가 되게 번거롭고요. 유모차도 자체가 무겁고, 부피도 크고, 밖에서 길이 울퉁불퉁하거나 하면 유모차 끌고 다니기가 어렵잖아요. 집에서도 못쓰고요.


그래요? 포대기가 더 유용하다니 굉장히 의외네요.
포대기는 일단 가볍고, 돌돌 말아서 묶으면 가방 속에 쏙 들어가거든요. 외출할 때 정말 편하죠. 유모차를 끌고 나갈 때도 포대기는 가방에 꼭 챙겼어요. 아기를 업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용도로 쓸 수 있거든요. 기저귀 갈 때도 포대기를 깔고 그 위에서 갈구요. 유모차를 탔는데 바람이 좀 불거나 쌀쌀한 거나 하면 이불처럼 덮어주기도 하고요. 아기가 잠투정할 때도 포대기만 하면 금방 잠이 들었어요.
특히 비오는 날이나 날씨가 겨울같은 추운 날에는 포대기가 정말 편해요. 아기 업고 우산 하나 쓰면 되거든요. 비오는 날에 잠깐 급하게 집 앞에 나가야 할 일이 있을 때 유모차 끌고 나가기가 정말 번거롭거든요. 유모차 커버도 씌워야 하고 손에 짐도 있으면 외출하기 어려워요. 그냥 포대기로 들쳐업고 우산만 쓰면 되서 너무 편했어요. 추운 날도 마찬가지에요. 등에 업고 그 위에 외투로 살짝 덮고 나갈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세척이 정말 편합니다. 아기 키워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기들은 항상 뭘 흘리거든요. 침도 흘리고, 토도 자주 해요. 기저귀 뗄 때쯤 실수도 잦아서 쉬나 똥을 묻히기도 하고요. 아기가 유모차나 아기띠, 카시트 더럽혀서 속상해본 경험 한번쯤은 있으실 텐데요. 포대기는 면 100%라서 옷처럼 세탁기에 그냥 빨면 되고, 금방 마르니까 정말 편했어요.
그래도 등에 업고 있으면 엄청 무거울 것 같은데요?
사실입니다. 아내가 아기를 낳고 몸이 많이 약해졌거든요. 걸핏하면 손목도 시큰하다 하고 허리 아프다 하고요. 게다가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는데 등에 업고 있으면 몸에 무리가 가죠. 그래서 아무래도 체력이 더 좋은 아빠인 제가 많이 업었어요.
그런데 아기를 키우려면 기본적으로 세살될 때까지는 업거나 안아줄 일이 굉장히 많거든요. 항상 보채고 칭얼대는데 업거나 안아주면 뚝 그쳐요. 그렇다고 부모들이 애만 안고 하루를 보낼 수도 없어요. 밥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빨래도, 청소도 해야 하고, 마트에 장보러도 가야 하고, 때로는 컴퓨터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아기띠는 앞으로 업어야 해서 두 손이 자유롭지를 못해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죠. 그런데 포대기는 뒤로 업으니 두 손이 정말 자유로워요. 배낭 가방을 등에 맨 느낌이랄까. 아기가 몸에 딱 밀착되어 있고 어깨 양쪽으로 무게가 분산되니까 정말 가벼워요. 아기 업고 있는지 까먹을 정도로요.
무엇보다 아기가 너무 좋아해요. 지금까지 주변 아기 엄마아빠에게 포대기를 선물했는데 싫어하는 아기들은 한번도 못봤어요. 한국 아기 아니고, 외국 아기들도 포대기만 하면 싱글벙글해요. 가만히 보면 포대기를 하면 아기가 부모 어깨 너머로 부모가 뭘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거든요. 매일 천정만 바라보고, 따분한 모빌 풍경에 지쳤던 아기들이 부모 눈높이로 세상을 보니까 흥미진진한가 봐요. 부모 입장에서도 아기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소리가 부모 등으로 전해지니까 더 애틋하기도 하고요. 애착육아에도 제격이죠. 저희 애들 포대기로 많이 업혀 키웠는데, 포대기 덕분에 덜 울리고 순하게 키운 것 같아요.
부산 포대기 공방 사장님과의 인연
그러다 부산에 포대기 공방을 하시는 사장님을 알게 되었어요. 2015년부터 알게 되었으니, 벌써 6년째 알고 지내는 셈이네요. 사장님이 싱글 남자분이셔서 의외였지만, 포대기가 아기 정서에 얼마나 좋은지 하도 열정적으로 설명하셔서 감동을 했었어요. 저도 두 아이를 포대기로 키워온 부모로서 포대기가 얼마나 유용한지는 체득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장님이 포대기 연구를 꽤나 많이 하셨더군요. 전통 포대기는 흘러내리고 사용이 어려워서 쉽고 편한 X자 포대기를 개발해서 특허까지 받아가며 12년이라는 시간동안 포대기 외길만 걸어오셨더라구요.
사장님도 그렇고, 저도 안타까웠던 사실은 더이상 포대기를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거였어요. 일단, 저출산이라 태어나는 아기 수 자체가 적고요. 요즘 부모들은 맞벌이도 많이 하고, 집에서 아기를 키우는 일 자체가 드물잖아요. 엄마는 아기를 낳기만 할뿐, 낳은 이후에는 거의 아기돌보미나 어린이집에서 아기를 키우는걸요. 그러니 아기를 업고 다닐 일 자체가 적고요. 무엇보다 포대기에 대해서 촌스럽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실제로 무늬가 촌스럽기도 하죠) 아기띠를 하거나 유모차를 할지언정 포대기는 생각도 안하고요. 애착육아도 하고 싶어 하지 않죠. 아기한테 매이고 싶지 않으니깐요.
저는 외국인이지만 아이 둘 키우는데 포대기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이라, 이대로 포대기 전통이 사라지는게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포대기를 찾는 사람이 사라지면 공방도 문을 닫을 것이고, 포대기는 결국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구시대의 유품이 되어버리고 말잖아요. 저는 한국의 지혜가 담긴 포대기가 앞으로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거든요. 저희 딸들이 손주를 낳아오면 그때도 업어 키우고 싶고요.
아빠 포대기라니 굉장히 신선한데요?
제가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거든요. 아내도 일을 했고, 둘째는 제가 육아휴직을 3년 해서 키웠어요. 그래서 둘째는 울때도 “아빠, 아빠”하면서 울었죠. 보통 아기들은 엄마 찾으면서 울잖아요. 저는 외국인이라서 포대기에 선입견 자체가 없었어요. 아기띠도 해보고, 유모차도 썼지만, 포대기는 포대기만의 역할이 있어요. 아기를 포대기로 들쳐업고 모든 것을 다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프랑스에 아기 낳은 지인들에게 포대기를 꼭 선물했어요. 처음 보는 물건에 어리둥절했지만 방법을 가르쳐 주니 다들 엄청 유용하게 썼어요. 심지어 제 사촌은 아기를 업고 마당에서 잔디도 깎고 했어요.
그런데 기존 포대기에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디자인이 너무 유치하고 알록달록하다는 거에요. 노랑, 분홍, 곰돌이, 땡땡이 무늬 등등, 외출해서 하고 다니기에는 너무 눈에 띄다보니 좀 부담스러웠어요. 두번째 문제는 사이즈가 너무 작다는 거였어요. 한국에서는 대부분 아기엄마나 할머니가 쓰시다 보니, 제가 쓰기에는 너무 작아서 우스꽝스러웠죠. (참고로 제가 키가 190cm인 거구입니다. 몸무게는 비밀) 세번째 문제는 포대기 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처음에는 아기를 떨어뜨릴까봐 너무 겁이 났는데, 몇번 해보니 괜찮더군요.
그렇게 그동안 직접 겪었던 불편한 점을 개선한 아빠 포대기 디자인을 했고, 포대기 사장님하고 여러번 조율을 통해서 최종 결과물이 나왔어요. 키 190cm가 넘는 거구의 아빠가 밖에 외출하고 나가도 촌스럽지 않은 핏이 나와야 하고, 아기 몸에 닿는 것이니 면 100%여야 하고, 항상 뭔가를 묻히고 흘리는 아기 때문에 때가 타도 바로 보이지 않는 색깔이어야 하며, 대를 이어 물려주고 100년을 써도 거뜬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재봉해 주어야 한다는 무리한 요구사항을 드려서 포대기 사장님이 조금은 버거워 하셨지만 ‘인생 포대기’ 한번 만들어 보자며 으쌰으쌰 하여 결국 꿈꾸던 아빠 포대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아빠 포대기 모델은 본인인가요?
저 모습이 저라면 참 좋겠습니다만, 저는 아니구요. 모델이자 유튜버 Jeff Somec씨가 재능기부를 해 주었답니다. Jeff씨도 한국 여자분과 국제 결혼해서 귀여운 아기 둘을 키우고 있는데, 아기들이 포대기를 너무 좋아한다더군요. 한국 포대기 전통이 계승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재능기부 모델을 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한번 Jeff씨한테 감사 드립니다. 참, <포대기 하는 법>도 유튜버로 제작해서 곧 올려주신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아빠 포대기를 만드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돈이 목표였다면 시작에서 접었어야 했겠지요.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나처럼 아빠 포대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한명쯤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그 생각을 실제로 실현해 주신 포대기 사장님과 재능기부 모델이 되어주신 Jeff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국 포대기에 애정을 갖고, 아빠 포대기를 디자인 했던 프랑스인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 영광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포대기여! 영원하라!> 라고 외쳐도 될까요?
포대기 사이즈
사진 속 아빠 모델 185cm, 70kg이고 아기는 12kg 정도입니다. 실제로 포대기 주변 사람 시착해보니 부모 키 155cm~190cm, 몸무게 45kg~120kg까지 가능하고, 아기는 신생아부터 아무리 큰 아기도 업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른도 업을 수 있음)